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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안내] [코리아리포트]시대 초월한 이용순 달항아리 현대미술 전위가 되다
등록일2023-10-05 조회수586

조선 도공 방식으로 달항아리 빚어…공력과 자연힘이 완성
반세기 숙련된 온몸의 작품…자연을 보는 듯한 감동 전해
김환기 "백자 현대미술 전위 될 것"…이용순 달항아리 근접
박서보 "형식, 테크닉 뛰어넘은 경지"…세계 컬렉터들 소장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들과 전시장 전경 일부. ​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들과 전시장 전경 일부. ​

최근 미술계의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두 전시가 막을 내렸다.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한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가 지난 10일 100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약 15만명이 유료 관람하며, 호암미술관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웠다.

지난 9일 폐막한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2023’에는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를 포함해 12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해 작품을 선보였고, 나흘간 8만 여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프리즈 서울’ 행사 중 국내 작가로는 김환기의 예술 여정을 볼 수 있는 '서울, 여기서 다시 만나다' 전시에 관객이 집중됐다.

가장 관심을 받은 인물은 ‘단색화 거장’ 박서보(92) 화백으로, 휠체어를 탄 박 화백이 프리즈 전시장에 들어서자 구름처럼 인파가 몰렸다.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김환기(1913∼1974)와 한국 단색화의 대부,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로 불리는 박서보 화백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제공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제공

박 화백은 1950년 홍익대 동양화과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으로 청전 이상범, 고암 이응로 교수가 학교로 돌아오지 않아 서양화과 교수로 있던 김환기의 가르침을 받았고, 전공을 바꿨다.

김환기와 박서보 화백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있지만, 모두 ‘달항아리’에 심취한 공통점이 있다.

특히 김환기는 ‘자신의 교과서는 도자기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백자(달항아리)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는데 이러다간 종생 항아리 귀신이 될 것 같다”고 고백한 김환기는 한 항아리를 특히 좋아해 ‘달항아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조선 시대에는 ‘달항아리’라는 명칭이 없었다. 그저 흰 빛깔의 큰 항아리라 하여 백자대호(白瓷大壺), 백항(白缸), 백자 항아리 등으로 불렸다. 

김환기는 해방 이후 도자를 구입해 작업실과 거실 곳곳에 배치하였는데, 박서보 화백의 서울 연희동 삶의 공간과 드넓은 전시실에는 여러 달항아리가 조화를 이루며 적절한 공간에 동행자처럼 숨쉬고 있다.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

달항아리는 조선시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등장했다가 한 세기만에 사라진 백자로, 중국‧일본에는 없던 조선 고유의 것이다.

달항아리는 16∼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전국이 초토화된 뒤 기근이 만연해 생활이 어려웠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화려함이 사치이고 검소함이 미덕인 시기, 달항아리는 그런 시대를 반영해 능숙한 최고 장인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기술만 있으면 백자 달항아리를 만들 수 있었다. 

그처럼 꾸밈없이 순박한 백자 달항아리는 조선의 국력이 회복되면서 백자에 색이 입혀지고 화려한 도자기로 채워지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다채(多彩) 자기가 일본과 중국에서 유행하고, 수입된 다채 자기가 일상생활에 사용되면서 순수한 민낯의 백자 달항아리는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사라진 달항아리는 희소성과 특별한 매력으로 일제강점기 일본 예술인과 서양 도예가의 관심을 끌었다. 

해방 후엔 일부 예술인들과 전문가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 중 김환기는 달항아리로 명명한 백자를 특히 좋아했다. 골동가게 상인의 책 <우당 홍기대, 조선백자 80년>은 그런 김환기의 모습을 “키 크고 점잖은 사람, 명동에서 항아리를 사 가슴에 안고 성북동까지 걸어갔다”고 묘사했다.

김환기의 절친인 최순우 전 중앙국립박물관장은 “폭넓은 흰 빛의 세계와 부정형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대의 부침을 겪으며 국내외 예술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온 달항아리를 모처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들과 전시장 일부 전경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들과 전시장 일부 전경

서울 계동길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이용순 달항아리 전’이다.

이용순(66)의 달항아리가 특별한 것은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와 가장 닮아있다는 점이다. 그가 달항아리를 처음 만나고 심혈을 기울이기까지, 제작하는 과정 등이 그러하다.

이용순은 전문 도예가도 아니고 미대를 나오지 않은 도공으로, 도자기를 수리·복원·재현하는 일로 도자세계에 입문했다. 생업으로 시작했지만 도자의 매력, 특히 순백자·청화백자에 빠져들었고, 전국 도요지를 찾아 백자 파편을 구해 연구했다.

그러던 1992년 전통 백자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이용순은 어느 가을 밤 지인의 대청마루에 놓인 조선 달항아리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달항아리의 매력에 빠져 전력하게 된 계기였다. 

이용순은 직접 흙을 채취해 백색의 태토를 만들고 물레질, 구워내기까지 온 정성을 쏟는다. 조선 백자 전통 방식대로 전기· 가스 가마가 아닌 소나무 장작 불가마에서 직접 구워낸다. 

그는 “작품 실패율이 높지만 불의 조화, 자연적인 요변에 따른 전통적 미감을 중시해 장작가마를 고수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탄생한 달항아리는 완벽하게 둥글지는 않은 비정형으로 도자마다 모양이 다르고, 색깔도 다양한 백색을 띈다.

달항아리의 가장 매력적이고 다른 자기와 구별되는 점은 비대칭의 대칭, 부조화의 조화로 표징되는 자연미라 할 수 있다. 

이를 최순우는 "아주 이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대칭(Symmetry)과 비대칭(Asymmetry) 사이에 형성되는 조형의 원리를 균형, 조화, 통일 등의 개념으로 정리해 왔고, 그 조형원리는 시공을 초월해 다양한 유형의 예술 작품에 운용되었다.

한국 미학의 초석을 닦은 고유섭은 ‘비균제성’을 한국미의 하나로 꼽았다. 정확한 대칭을 이루지 않아 외려 아름다운 것이 한국 특유의 미학이라는 것이다.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

이용순의 달항아리는 그러한 비균제성, 비대칭의 미학이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40여년 도자를 다뤄온 이용순은 자연의 섭리를 좇아 손수 달항아리를 빚어 가마에 넣고 불과 바람(공기), 시간에 세심한 공력을 들인다. 온전한 달항아리를 탄생시키기 위한 과정은 무심한 자연에 순응하는 수행이며, 이용순이 추구하는 조형미의 궁극이기도 하다.

현대 도예의 지평을 연 버나드 리치(1987∼1979)가 조선 백자에 매료된 이유로 ‘자연스러운 무심함(natural unselfconsciousness)’을 든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용순 달항아리의 매력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태와 그만이 품어낸 ‘색(色)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달항아리의 색은 약간 푸른기가 돌거나 은은한 우윳빛의 유백색으로 빛에 따라 다양한 백색을 보여준다.

그는 달항아리의 독특한 미적 요소들 가운데 색감에 마음을 쓰고, 은은한 유백색이 좋다고 한다.

그러한 유백색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마의 도자기가 변화(요변)를 일으켜 유백색이라는 색상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완전 연소되는 산화불이나 불완전 연소되는 환원불이 아닌 경계의 중성불에서 굽는다. 

달항아리의 유백색은 품은 내용물에 따라 변색되기도 하는데  숨을 쉬는 항아리로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는 “숨을 쉬는 항아리, 시각만이 아니라 만졌을 때의 촉감도 중요하다”며 “그런 쪽에 중점을 둬서 연구하고 만들고 있다”고 한다.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

이는 일본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서정시인 무로 사이세이(1889~1962)가 조선의 달항아리에 심취해 ‘이조부인(李朝夫人)’이라 는 제목으로 쓴 글에서 “백자의 부푼 몸통은 보름달처럼 아름답고, 질감은 여자의 피부처럼 섬세하다”고 한 것과도 상통한다.

사이세이는 달항아리에 대해 "원래 이조의 물건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 백자처럼 크고 영롱하고 청아한 느낌의 물건은 흔치 않다"고 했다. 

이용순의 달항아리는 도자 애호가들 사이에 명작으로 소문이 났고, 도자에 관심이 높은 일본 컬렉터들이 많이 찾았다.

그의 달항아리는 2008년 첫 개인전을 열면서 국내외 주목을 받았다. 

박서보 화백은 “형식이나 테크닉을 뛰어넘어서 몰입의 경지가 느껴진다“며 극찬을 하고, 그의 작품을 직접 구매까지 했다.

이용순의 달항아리는 마치 자연을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는 의미로, 일찍이 박 화백은 대만고궁박물관의 도자를 관람하고 가진 세미나에서 대만 관계자들과 참석자들이 중국 도자의 화려함과 신기에 가까운 조각도자들을 자랑하고 감탄할 때 달항아리로 이들을 침묵하게 한 적이 있다. 

"중국 도자의 화려함은 경지에 달했고, 신의 작품이라 할만한 조각도자는 표현이 불가할 정도다. 모두 보는이를 놀라게 하고 감탄을 하게 한다. 이에 반해 한국의 달항아리는 볼품도 없고, 화려한 색도 없고, 주위에 있는 듯 없는 듯 주목도 받지 못한다. 그러나 관람객을 놀라게 하고 경탄케 하는, 사람을 압도하는 것은 순간이며 계속 볼수록 멀어지게 한다. 달항아리는 볼수록 편안해지고 마음을 끈다. 자연의 일부로 사람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신기로운 도자는 자연과 멀고, 사람과 거리가 있다. 달항아리는자연이 빚은 것이지만, 중국의 놀라운 도자는 사람의 재기가 만든 것이다."

한국예총 이범한 회장은 옛도자 방식대로 달항아리를 만드는 이용순을 조선 도공의 화신을 보는 듯하다며, ”이용순의 달항아리는 당당하고 초월적이고 고고하면서도 모든 것을 품어주는 겸양지덕의 미학을 갖췄다. 감히 최고의 달항아리 작가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들과 전시장 전경 일부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들과 전시장 전경 일부

이용순의 달항아리는 조선 도자의 원형에 가깝고 독자적인 예술성이 평가받으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 명망가들의 컬렉팅 대상이 되고 있다.

벨기에의 세계적 디자이너이자 컬렉터, 갤러리로도 유명한 악셀 베르보르트는 일본에서 그의 달항아리를 보고 소장했고, 방한 때면 그를 찾곤 한다.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도 이용순의 달항아리를 자신의 공간에 앉혔다. 

이타미 준은 2003년 세계적인 동양박물관인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에서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고, 주요 국가의 건축상을 휩쓴 세계적 건축가로 건축물이 세워질 장소의 고유한 지역성을 살려서 인간의 삶에 어우러지는 건축을 추구한다. 이용순의 달항아리는 인간의 삶에 어우러지는 또 다른 건축인 셈이다.

이처럼 이용순의 달항아리가 국내외적으로 권위있는 예술가들의 평가를 받고 실제 소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개인적인 축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과 한국 도예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환기는 1953년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로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김중업에게 쓴 편지에서 한국 미술의 현실을 통탄해하며 백자가 시대를 초월한 예술이 될 것이라는 놀라운 안목을 보여줬다.

“우리들은 넓은 세계에 살면서도 완전히 지방인이외다. 한국의 화가일지는 몰라도 세계의 화가는 아니외다….”

“코르뷔제의 건축이나 정원에 우리 이조 자기를 놓고 보면 얼마나 어울리겠소. 코르뷔제의 예술이 새롭듯이 이조 자기 역시 아직도 새롭거든. 우리의 고전에 속하는 공예가 현대미술의 전위에 설 수 있다는 것, 이것은 크나큰 사실입니다.”

’현대 건축의 선구자‘ 르코르뷔지에의 건축과 백자를 함께 언급한 것도 주목할만 하지만, 시대를 초월해 아름다움의 본질을 꿰뚫어 본 김환기의 안목이 놀랍다.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와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그림자 그림)‘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와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그림자 그림)‘

김환기는 달항아리의 빛과 형태에서 한국적 추상화의 가능성을 보았고, 자신의 화폭에 이를 실천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의 추상미술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그의 작품은 국내 작가 중 경매 사상 최고가(2019년 크리스티 홍콩, ’우주‘ 132억)를 기록하기도 했다.

’프리즈 서울 2023‘은 한국이 세계 미술의 아시아 중심지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한국이 더 이상 김환기가 탄식했던 ’세계의 변방‘이 아니란 걸 입증했다. 

그리고 그 무대의 중심에 김환기가 자리했다.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한 김환기 작품이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이조 백자가 한국미술의 전위가 될 것이라는 그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기도 하다.

2000년 런던의 대영박물관 한국실을 개관하면서 핵심 유물로서 18세기 조선 백자 달항아리(Moon Jar)가 전시된 것도 ’한국미술의 전위‘가 현실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달항아리가 대영박물관에 놓이게 된 데는 영국 현대 도예의 길을 연 버나드 리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를 통해 조선 도자에 눈을 뜬 리치는 자신이 존경하는 백자의 나라에서 개인전을 갖고 싶어 1935년 덕수궁에서 전시회를 열고 강연회도 가졌다. 그리고 귀국할 때 대영박물관의 그 달항아리를 구입해 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며 기뻐했다. 

리치는 ”현대 도예가 나아갈 길은 조선도자가 가르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와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그림자 그림)
도예가 이용순의 달항아리와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그림자 그림)

무릇 도자를 포함한 모든 예술작은 작가의 손을 거쳐 존재성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보는 이에게 어필하고 때론 압도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를 한다.

그러나 존재성이 두드러질수록 색은 화려해지고, 형태는 다기해지며, 대화는 일방적으로 흐른다. 자연스레 작품은 보는 이들과 거리가 생기고, 점차 존재성을 잃어간다.

리치가 사랑한 조선 도자는 흙과 불, 바람(시간)의 자연으로 빚어지고 도공은 말 없이 자연의 순리를 따를 뿐이다. 달항아리는 자연에서 태어나 영원히 자연에 머문다.

인류의 예술은 자연(우주)에서 발원하고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돼왔다. 달항아리는 자연에서 태어났지만 온전히 자연 모습대로 존재하는 묘한 특성을 지닌다. 

달항아리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세상을 품고, 얘기를 들어주고 풀어준다. 달항아리는 아무것도 담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자연(우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리치가 말한 ’현대 도예가 나아갈 길‘은 도예가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자연 그대로, ’채움‘이 아닌 ’비움‘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공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달항아리는 그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이용순의 달항아리는 제작 과정이나 최고 예술가들의 평가, 명망가들의 컬렉팅 등을 종합할 때 ’현대 도예의 길의 전위‘라고 할 만하다. 

이용순의 달항아리를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또다른 의미가 있다. 후지시로 세이지는 한평생 사랑‧공생‧평화를 주제로 다루어온 ’카게에(그림자 그림)‘의 거장으로 그의 작품도 함께한다.

14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왼쪽)이 '이용순 달항아리 전'을 관람하면서 강혜숙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대표, 이용순 도예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제공
14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왼쪽)이 '이용순 달항아리 전'을 관람하면서 강혜숙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대표, 이용순 도예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 제공

세계 평화의 선봉 역할을 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4일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관람하고 이용순 도예가, 강혜숙 갤러리 대표와 담화를 가졌다. 반 전 총장은 '평화' 메시지를 전해온 후지시로 세이지를 잘 알고 있고, 이용순의 달항아리에 대해선 평안함과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이용순의 순백의 달항아리와 빛과 그림자를 평생의 화두로 다뤄 온 후지시로의 작품은 묘하게 어우러진다.

후지시로에게서 빛과 그림자는 상호 보완적 관계로, 화면에 그림자를 허락해 빛의 아름다움을 선보임으로써 세상을 살아갈 위로의 말을 전한다. 달항아리 역시 어둠속에서 더욱 빛나는 달처럼 넉넉하고 푸근한 자태로 세상을 위무해준다.  전시는 10월 29일까지.

박종진 기자 krjjp@korearepo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