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 도시 벚꽃` [사진 제공 =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달빛이 첼로 연주자의 조명이 되고, 벚꽃 나무 아래서 고양이 한 쌍이 껴안고 있다. 튤립 꽃봉오리 안에서 하프를 켜는 소녀 아래에는 잔잔한 물이 흐른다. 그림동화책이 아니라 전시장 풍경이다.
'동양의 디즈니'로 불리는 일본 그림자 회화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97)의 개인전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장관을 이룬다. 구순이 넘은 노인 작품에서 놀랍게도 천진난만한 동심과 소녀 감성이 느껴진다. 그 비결에 대해 작가는 "유년 시절부터 그림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게 좋았고, 인형극을 하면서 상상력이 풍부해졌다"고 설명한다.
동화 같은 풍경 속에 등장하는 난쟁이와 소녀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다. 나무 위에서 각종 악기를 연주하고 하늘을 날면서 행복을 만끽한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다. 특수용지에 밑그림을 그리고 잘라낸 뒤 조명을 투사해 색감과 그림자로 연출한다. 빛의 강도, 오려 붙인 재료와 투과율 등을 치밀하게 계산해 작품을 완성한다. 작가는 "빛과 그림자는 인생과 우주 그 자체다. 나는 빛과 그림자로 자연의 아름다움, 살아 있는 생명의 소중함과 인생을 그려가고 싶다"고 강조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물이 담긴 수조와 거울로 그림을 확장한 작품 '목마의 꿈' '코스모스 노래하다' '꽃과 소녀' '만주사화' '오오미와 신사' 등 160여 점을 펼쳤다. 2005년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개관 기념전에 이은 국내 두 번째 개인전이다.
사랑과 평화, 공생을 담고 있는 그림자 회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시작됐다. 초토화된 도쿄에서 골판지와 전구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정전이 잦았고, 그는 그림자 회화로 한 줄기 빛을 찾았다. 작가는 "아픔을 그리고 싶지 않아 즐거운 상상을 더했다"며 "지구에 태어난 인간으로서 이 비참하고 어리석은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20만명 이상이 숨진 히로시마 원폭 피해 현장 위로 알록달록한 종이학들이 날아가는 작품 '슬퍼도 아름다운 평화로의 유산'을 전시해 평화를 강조한다. 그는 "2004년 히로시마 원폭 현장에서 비와 눈물에 젖어가며 7일간에 걸쳐 스케치했다"면서 "당시 전쟁을 경험한 몇 남지 않은 작가이자 인간으로서 의무로 여겼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2011년에도 후쿠시마 원전 피해 지역을 찾아 '억새풀 마을'을 제작했다. 마침 피해 지역 강에 연어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살아 있는 연어를 보고 '지금이다'라는 기분이 들었고 현재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에 달려 있다는 걸 느꼈다"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잠자는 숲'은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작품이다. 고령에도 작가는 하루 1만보 이상 걷고 7시간 이상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노장의 열정이 한국 관람객들 발걸음을 당기고 있다. 전시는 10월 2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