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편함은 불가능과 다르다. 황반변성과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4급‘이라는 나의 장애등급은 불가능이 아닌 불편함의 척도일 뿐이다. 30센티미터 안쪽만 간신히 볼 수 있고 그 너머는 흐릿한 형태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못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기획도 할 수 있고 연기도 가능하다. 다행히 병의 진행이 느려서 완전히 실명할 일은 없을 거란다. 그러면 된 것이다.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배우이자 난타 제작자로 유명한 송승환 씨의 60년 예술인생을 돌아보는 사진 등 자료전이 최근(11일~22일) 후지시로 세이지 북촌스페이스에서 열렸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전시장을 찾은 가운데 이색 전시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런닝타임 10분 영상작품 심연 (深淵)이다.

동갑내기(57년생)감독 김종원의 작품이다. 빈티지 용접 마스크 고글부분에 영상을 연출한 것이다. 친구 송승환을 위해 작업한 작품으로 진한 우정이 녹아 있다. 두 사람은 하이틴 배우로 같이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80~90년대를 대표하는 광고감독 중의 한 사람인 김종원 감독은 인간미를 담은 휴머니즘 광고를 주로 연출해 왔다. 주윤발의 밀키스 광고,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 같던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는 네레이션으로 깊은 울림을 준 삼성 래미안 광고, SK텔레콤 ‘사람을 향합니다-봄’편 등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김 감독은 작품 부제에 "송승환에게 주어진 ‘흐릿함은 더 깊은 심연으로의 초대"라고 적었다. 흐르는 바닷물 배경에 희미한 이미지들이 중첩되고 미지의 어느곳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듯하다. 자신에게 몰입할 때 들리는 내면의 소리가 어디쯤에서 들리는 듯하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가 보내는 신호다. 또 다른 나에게 말을 걸어 자신의 미션을 찾아가는 친구 송승환에게 보내는 찬사다.
- 미술전문=편완식 기자
- 입력 2025.06.23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