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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안내] [노컷뉴스]모진 세상에 단비로 내린 '그림자'…"빛과 어둠의 상생"[EN터뷰]
등록일2024-03-20 조회수199

모진 세상에 단비로 내린 '그림자'…"빛과 어둠의 상생"[EN터뷰] (daum.net)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 100세 기념전 눈길
'오사카 파노라마展' 기획자 강혜숙 대표
"각박한 시대에 위로와 성찰의 공간으로"

후지시로 세이지 작품 '꿈이 태어나다'(2006).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제공후지시로 세이지 작품 '꿈이 태어나다'(2006).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제공
빛은 어둠이 있기에 빛으로서 더욱 빛나는 법이다. 어둠 역시 빛 덕에 그 존재를 뚜렷이 드러낸다.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의 그림자 회화 작품이 그러하다. 빛과 어둠의 생리를 직관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공생, 상생의 가치를 웅변하는 까닭이다.


다음달 7일까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는 '오사카 파노라마展'은 후지시로 세이지 작품의 정수로 꼽히는 그림자 회화 20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대규모 전시다.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라는 데도 의미가 남다르다.

'오사카 파노라마展'을 기획한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강혜숙 대표는 "100세를 맞이해 처음 여는 전시인 만큼 작가 스스로도 지금까지 이어온 전시 가운데 가장 공들여 준비했다고 말할 정도"라고 전했다.

그림자는 빛이 물체를 통과하지 못해 생기는 현상이다. 결국 빛과 어둠을 활용한 그림자 회화에는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는 물론 다소 서늘한 분위기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강혜숙 대표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오사카 파노라마展' 전시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진욱 기자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강혜숙 대표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오사카 파노라마展' 전시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진욱 기자최근 해당 전시관에서 만난 강 대표는 "우리는 보통 빛과 어둠이라고 하면 '음'(陰)에 초점을 맞춰 빛을 익숙하게 생각하고 음은 어두운 면으로 여기기 쉽다"며 "후지시로 작가는 빛과 어둠의 조화를 강조한다. 공생, 상생으로 서로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후지시로 작가는 지난 80년 동안 그림자 회화에 천착해온 장인이에요. 그는 10대 시절 모더니즘 영향을 크게 받은 유화를 그리던 작가였는데, 전후 물자 부족으로 작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빛과 그림자만 있으면 가능한 지금의 작업을 시작했어요. 시대가 작가의 길을 열어준 셈이죠."

시대가 흘러 컬러 텔레비전이 나오면서 흑과 백이 전부였던 후지시로 작가의 작품도 색을 입었다. 그의 작품은 선 하나하나를 모두 손으로 오려낸 결과물이다. 작품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그 섬세한 손길에 탄성이 나올 만큼 신비롭다.

"색채를 낼 때 쓰는 소재는 조명 필름이나 셀로판지인데, 그것을 일일이 긁어서 채도를 맞추고 겹쳐서 명암을 줍니다. 현재 수장고에는 그의 작품 3천~4천 점 정도가 있어요. 후지시로 작가는 원화를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하기 위해 판매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신념과도 같은 것이죠."

후지시로 세이지 작품 '난쟁이와 구둣방'(1974).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제공후지시로 세이지 작품 '난쟁이와 구둣방'(1974).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제공강 대표는 이번까지 후지시로 작가의 국내 전시를 세 번째 기획했다. 11년 동안 일본 유학 생활을 하면서 커다란 위안을 주는 그의 작품에 매료돼 지금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는 텔레비전 개국 전부터 그림자 인형극을 통해 활동해온, 스펀지처럼 스며든 작가예요. 미디어아트, 팝아트 매체 예술가로서는 후지시로 작가가 처음이라고 보면 됩니다. 굉장히 평화롭고, 위안을 주는 동심적인 작품 세계가 특징이죠."

후지시로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우리나라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다룬 작품 두 점을 새로 내놨다. 앞서 1958년에도 '선녀와 나무꾼'에 소재를 둔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번에 그 이야기를 매듭지은 셈이다.

강 대표는 "1958년 당시 30대로 왕성하게 활동한 후지시로 작가는 일본 현지 잡지를 통해 조선 설화에 바탕을 둔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게 '선녀와 나무꾼'이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후지시로 세이지 작품 '선녀와 나무꾼'(1958).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제공후지시로 세이지 작품 '선녀와 나무꾼'(1958).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제공
"구전설화에는 제목이 없잖아요. 조사해 보니 '선녀와 나무꾼'은 1970, 80년대에 '금강산의 선녀'로 불렸더군요. 이후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영향으로 '나무꾼과 선녀'라고 하다가 90년대 들어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후지시로 작가의 1958년 작품에는 '사슴이 맺어준 색시'라는 제목이 달렸었죠."

강 대표는 "당시 (해방 이후 수교가 단절된 상태였던) 한국과 일본 사이가 안 좋았는데도 조선 설화를 다뤘다는 점에서 후지시로 작가가 지닌, 예술가로서 사회적인 역할을 엿볼 수 있다"며 "그의 작품 가운데 전후 70년을 맞아 히로시마 원폭 돔을 표현한 것은 후세에 더는 이러한 어리석은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전했다.

지난 20년 동안 자기 길을 꿋꿋이 걷는 작가들을 주로 소개해온 강 대표는 "각박하고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후지시로 작가의 희망적인 작품을 통해 성찰의 시간을 갖고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좋아하는 일을 80년 동안 해오면서 거장이 된 작가의 작품을 통해 청소년들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전시가 됐으면 좋겠어요. 모든 것이 빨리 빨리 지나가는 시대잖아요. 노장의 섬세한 손길로 하나하나 오려낸 아날로그 작품을 보면서 그 시간만큼은 삶의 기쁨과 여유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후지시로 세이지 작품 '줄다리는 내 마음의 하프'(2014).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제공후지시로 세이지 작품 '줄다리는 내 마음의 하프'(2014).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