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회화로 불리는 ‘카게에’는 면도날로 종이를 일일이 오려 필름을 덧댄 후 빛을 투과시켜 완성하는 작품이다. 아트라이팅 액자에 걸어두고 감상하기에 빛과 그림자를 물감처럼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물감의 농도를 조절하는 듯 작가는 빛의 세기를 조절해 작품을 완성한다.
올해 100세를 맞은 그림 작가 후지시로의 카게에 작품을 소개하는 ‘오사카 파노라마’ 전이 26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화가였던 후지시로는 2차세계대전 직후 초토화된 도쿄에서 물감을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골판지와 전구를 이용한 카게에를 시작했다. 색채 없이 빛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새카만 실루엣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남겼다.
그의 역작으로 음성과 영상을 결합시킨 소니의 오토슬라이드가 있다. 1960년대 미디어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대중문화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일본의 잡지·공익광고·날씨예보 등 일본 대중문화예술 뒤에는 그가 있었던 것이다.
카게에 그림자극으로 출발했던 후지시로의 작품 활동은 나이 마흔을 넘어서면서 그림자 회화 쪽으로 기울었다. 날카롭게 오려낸 종이들이 빛과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화면은 환상 그 자체였다.
이번 전시에는 ‘서유기’ ‘요재지이’에서 영감을 받은 모노크롬부터 6m가 넘는 화려한 색채의 초대형 작품까지 200여 점의 원화를 선보인다.
전시작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일본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원화들이다. 후지시로는 ‘은하철도 999’의 원작인 ‘은하철도의 밤’을 비롯해 ‘첼로 켜는 고슈’ ‘구스코부도리 전기’ 등 다양한 이야기에 빛과 그림자를 보태 더욱 환상적인 예술 세계로 대중을 안내했다.
‘은하철도의 밤’이 1983년 블라디블라바 세계그림책원화전에서 황금사과상을 수상하면서 후지시로는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로 평가받게 되었다.
또한 그는 ‘천지창조’ 시리즈를 통해 성경이 인류에게 남긴 메시지를 체화하는 작업을 11년간 이어오면서 개성 강한 성화를 남기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카게에 외에 오사카·교토·나가사키 등 우리에게 친숙한 풍경을 그린 스케치와 우리나라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소재로 한 그림자 회화도 소개된다. 1958년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자 회화 5점을 제작한 바 있는 그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12점의 작품을 새로 만들었다.
한편 이번 전시는 2021년 이후 3년만에 한국을 찾은 후지시로 개인전으로 4월7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