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회화 ‘카게에’ 작가 후지시로 세이지 방한
“전쟁뒤 물감 하나 구할수없어
철사·빛으로‘카게에’만들어
작품주제는 평화·사랑·공생”
‘눈의여왕’‘은하철도의 밤’등
작품 활용한 그림자극도 인기
내년엔 예술의 전당서 전시
“한국 풍경 담은 작업 하고파”
“인간들의 싸움은 아주 옛날부터 계속됐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음악이나 미술 등 예술은 어디에서나 존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만 그려온 저는 그런 전쟁이 싫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으로 입대해서도 인형을 만들고 병사들과 함께 인형극을 하며 서로를 달래고 위로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엔 도쿄(東京)에서 물감 하나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들판에 굴러다니는 물건과 철사 등으로 빛만 있으면 완성할 수 있는 카게에(影繪)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그림자 회화’ 카게에로 일본 화단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노작가 후지시로 세이지(藤城淸治·96·사진)가 한국을 찾았다. 작가는 ‘동화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표현해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국에도 팬이 많으며 ‘일본의 디즈니’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이번 방한은 내년 한국에서의 대규모 전시를 앞두고 전시 장소인 ‘서울 예술의전당’ 사전 답사를 위한 것이다. 지난 2005년 롯데 에비뉴엘에 이어 한국에서의 두 번째 전시다.
후지시로 씨는 한국 전시를 하는 동안 “한국을 더 알고 싶다”며 “한국에도 안데르센 동화와 같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 같은 소재와 함께 한국의 풍경과 복장, 특이한 모습을 담아 작업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일 갈등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제 작품의 주제는 평화·사랑·공생입니다.
스토리가 있고 연출이 있는 연극을 대하듯 작품을 보며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소통하고 화해하기를 바랍니다. 요즘 한·일 관계가 어렵지만 한국과 일본은 감성적으로 연결돼 있기에 경제나 정치적인 면에서 오는 갈등을 줄일 수 있죠. 예술이나 문화는 그런 것들을 넘어, 인간이 세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카게에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동양적인 이 장르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으며 당당히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국가 간에도 갈등보다는 이런 예술이나 문화로 생산적인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는 일본에 ‘그림자극’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종전 후 게이오(慶應)대 교수로 인형극 연구가인 고바야시를 통해 ‘아시아의 그림자’ 연극을 알게 된 뒤 교회 주일학교에서 자신의 카게에 작품을 응용한 그림자극을 상연하기 시작한 것. ‘눈의 여왕’ ‘은하철도의 밤’ 등이 대표작이다. 또 1960년대 후반에는 개구리를 소재로 한 ‘케로용’ 캐릭터를 만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매일 1만 보 이상을 걸으며 운동을 한다”는 후지시로 씨는 96세의 고령에도 작업대에 앉아 작업을 한다.
나이 때문인지 많은 사람이 어떻게 소년 같은 동화적 상상력을 유지하는지 궁금해한다.
“저는 유치원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말없이 그리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었어요. 그런 저를 많은 분이 소중히 여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과의 인연을 좋아하고 또 소중히 여깁니다. 그림을 그리고 인형극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고, 여러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저의 감각과 상상력이 풍부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혼자만의 사색이 일차적 근원이라면 나이 들어 사람과의 소중한 만남이 제 상상력의 이차적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출처] 문화일보 https://url.kr/5zsvfl
[작성] 2019년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