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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안내] [문화일보]빛과 그림자가 만든 형형색색… 100세 老화백의 ‘동화’
등록일2024-02-01 조회수294
빛과 그림자가 만든 형형색색… 100세 老화백의 ‘동화’ :: 문화일보 munhwa

  • 문화일보
  • 입력 2024-01-31 09:33
  • 업데이트 2024-01-3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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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앤드루 랭의 동화집에 실린 ‘세 개의 오렌지’(1974) 시리즈 중 하나로, 컬러로 제작된 첫 카게에 이야기.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제공



■ 후지시로 세이지, 세종문화회관서 ‘오사카 파노라마’ 展

잘라낸 밑그림에 특수용지 붙여
조명 투사한 ‘카게에’ 장르 창시
‘동양의 디즈니’로 불리며 호평

“중요한 건 사랑과 평화의 마음
한·일관계도 더 유연해졌으면”

photo후지시로 세이지

“한국 전시에 온 마음을 쏟았습니다.” 상수(上壽·100세)에 든 노(老) 화백의 표정은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만큼 천진하고 동심(童心) 가득했다. “한국을 잘 알고 싶고, 더 가까이하고 싶다”며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맹추위로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에서도 서울을 찾은 작가는 카게에(影繪·그림자 회화)를 처음 완성했던 80여 년 전과 다름없이 새해를 앞두고 한국 전시에 선보일 신작을 만드는 데 열중했다고 밝혔다.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사랑과 평화, 공생의 가치를 한국 관람객과 나누고 싶다는 뜻에서다.

20세기 일본 현대미술과 대중문화에 큰 족적을 남긴 후지시로 세이지(藤城淸治)가 작품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오사카 파노라마’에 평생의 화업을 망라한 200여 점의 작품이 걸렸다. “작품 못지않게 전시공간도 중요하다”는 작가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비록 일본에서 작품을 만들었지만 국경을 넘나들며 전시를 준비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한국 사람들은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1924년 도쿄에서 태어난 후지시로는 일본이 사랑하는 작가다. 1940년대 전통 그림자극에서 영감을 받아 면도칼로 잘라낸 밑그림에 특수용지를 잘라 붙인 뒤 조명을 투사해 완성하는 카게에 장르를 창시했다. 이후 수십 년간 인기 잡지 ‘쿠라시노테쵸우’(暮しの手帖·삶의 수첩)를 비롯해 주요 신문과 방송에 카게에 그림들을 실어 이름을 알렸다.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된 미야자와 겐지(宮瑞悟)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삽화로 그리기도 했다. 1980년대 대중문화 르네상스를 일군 일본의 주역 세대가 후지시로의 카게에를 보며 성장한 셈이다. 실제로 그가 만든 개구리 캐릭터 케로용은 1970년 오사카 만국 박람회 포스터를 장식했고, 역사 깊은 공연장인 부도칸 무대에 올랐을 정도다.

photo1958년 한국 설화 ‘선녀와 나무꾼’을 카게에로 완성해 인기 잡지 ‘쿠라시노테쵸우’에 연재한 시리즈 작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했다.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제공



후지시로의 카게에는 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동양의 디즈니’로 불리는 카게에엔 흑과 백의 강렬한 대비를 바탕으로 빨강과 노랑, 초록 등 다채로운 색감이 펼쳐진다. 빛과 그림자의 조화가 서양의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느낌을 주고 반 고흐를 매료시킨 일본 우키요에(浮世繪)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가 담아낸 밤하늘의 불꽃놀이 같은 정취를 풍긴다. 100년을 살며 겪은 전쟁, 고도성장, 고령화, 자연재해 등 시대의 아픔을 동화처럼 풀어내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후지시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으로 도쿄가 초토화된 시기에 카게에를 시작했다”며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인류가 사랑과 평화의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게 늘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자가 있는 곳엔 반드시 빛이 존재한다”며 “갈등이 있는 곳엔 평화가 부각되는 것처럼 사랑과 공생을 평생의 주제로 삼은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했다.

후지시로는 한국에 특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1958년 한국의 전래설화 ‘선녀와 나무꾼’을 카게에로 만들었고, 한·일 수교 40주년인 2005년엔 서울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새롭게 제작한 ‘선녀와 나무꾼’ 작품을 선보인다. 후지시로는 “이번 전시로 한·일 관계가 더 유연해지는 계기가 되고, 한국에서 싹튼 삶의 기쁨이 온 세상에 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